왜란 후 신이 된 사무라이 고양이 - 고양이 인문학 : 묘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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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인문학​​​​​​​​​​​​

한 이야기

글 | 황의웅 (크리에이터, www.miyaclub.com)



 

왜란 후 신이 된 사무라이 고양이


4백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두 번의 왜란은 조선 인구의 90%를 사라지게 할 만큼 혹독했다. 침략 명령을 내린 막부의 수장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각지의 성에서 병력을 동원한 뒤 일부는 조선으로 보내 공격을 시키고 일부는 후방에 남아 지원을 하게 했다.


가고시마의 사쓰마 번의 영주였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도 임진왜란에 자신의 군사 1만여 명을 이끌고 조선으로 들어왔다. 그의 부대는 다른 부대와 합세해 창원, 성주, 개령, 추풍령을 거쳐 한양까지 진격해 점령했다. 잘 싸우고 지략도 출중한 무장이었다. 


그런데 애묘가였던 시마즈가 진두지휘한 이후의 정유재란 사천성 전투 때 고양이 7마리를 데리고 갔다는 특이한 기록이 남아있다. 군견은 들어봤어도 군묘는 처음 듣는 말일 것이다. 그러면 시마즈는 왜 고양이들을 데리고 왔을까? 


이전에 한번 얘기한 적이 있는 고양이의 눈 시계 때문이다. 즉 고양이 동공의 변화로 시간을 재고 그것을 활용했다. 시마즈는 7마리 고양이를 각 부대에 배치한 뒤 고양이 눈으로 시간을 가늠하며 출전을 준비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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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digitalnomad.nationalgeographic.com)
 


그러나 사천성 전투에서 왜군은 조선과 명 연합군의 병력에 밀려 결국 패하고 말았다. 고양이도 7마리 가운데 5마리는 죽고 2마리만 살아남았다. 이후 시마즈는 남은 고양이들을 데리고 간신히 고향인 사쓰마로 돌아왔다. 그때 살아남은 두 고양이의 이름이 ‘미케’와 ‘야스’였다.  


훗날 이 두 고양이가 죽자 시마즈 가문에서는 예전에 죽은 5마리 고양이와 함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1658년 별장의 정원인 센간엔(仙巌園)에 작은 신사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고양이신을 모시는 ‘네코가미진쟈(猫神神社)’이다. 이 고양이 역사 유적은 현재 세계문화유산에 포함된 센간엔의 인기 있는 볼거리 중 하나가 되어 있다. 


저택 뒤편의 작은 언덕배기에 있는 이 신사는 입구의 기둥 문을 지나면 석등과 작은 비석, 그리고 고양이신의 유래가 새겨진 네모진 돌 등이 자리해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고양이의 장수를 기원하는 공양제를 지낸다. 또 고양이 눈 시계 때문인지 매년 6월 10일을 기념일로 정해 시계업자들이 모여 축제를 열기도 한다.


조선 침략에 동원된 왜군의 고양이가 이 정도로 대우받는데, 우리도 두 왜란 때 죽었을지 모를 이 땅의 고양이들을 위해 위령제라도 한번 지내야 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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