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고양이가 지붕 위에 오른 까닭은 - 고양이 인문학 : 묘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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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인문학​​​​​​​​​​​​

한 이야기

글 | 황의웅 (크리에이터, www.miyaclub.com)



가야의 고양이가 지붕 위에 오른 까닭은


세계의 역사를 살피다 보면 고양이와 관련해 아주 오래된 유물을 자주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바스테트 여신상이나 고양이 미라, 고대 그리스의 석관 등에 새겨진 고양이 부조, 폼페이 유적의 고양이 모자이크 등 익히 알려진 것도 적지 않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그런 유물이 있을까?


자료를 조사해 보니,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고양이 모양의 토우(흙으로 된 인형)가 있다. 당시 옛 사람의 무덤에서 사람 모양은 물론 여러 동물 모양의 토우가 묻힌 것이 발견됐는데, 그 중 고양이도 있었다.


그러나 명칭을 표시하지 않으면 고양이라고 알기 어려울 만큼 그 모양이나 특성이 잘 나타나 있지 않다. 반면 5~6세기 가야의 유물인 ‘집모양토기’는 고양이의 겉모양뿐 아니라 그 생태까지 잘 묘사되어 있다. 아마 우리 역사에서 고양이 유물 중 유물다운 유물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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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현풍에서 출토된 이 집모양토기는 겉모양이 보통 당시 것으로 추정되는 집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초가지붕 위에 고양이가 올라서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쥐 두 마리를 조용히 노려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오늘날 디오라마와 거의 비슷한 느낌인데, 고대 유물치곤 그 익살스러움이 차고 넘친다. 


그러면 가야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토기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전문가들은 다락집 형태의 모양으로 미루어 주거용이 아닌 곡식을 저장해 두는 창고로 추측하고 있다. 즉 고양이가 곡식을 훔쳐 먹으러 오는 쥐들을 감시하는 모습을 토기로 재현한 것이다.  


이에 짐작해 보면, 당시 농경 생활에서 귀한 곡식을 축내는 쥐는 가야 사람들에게도 골칫거리였던 것이 분명하다. 모든 고대 국가들에서 그랬듯 말이다. 오죽했으면 이런 독특한 토기까지 만들어 죽은 자의 무덤에 넣어 두고 곡식의 안정함을 바랐겠는가.


가야 사람들에게 고양이는 역시 쥐를 잡는 특별한 존재였다. 9세기경 것으로 경주 월성 동남쪽 신라 왕궁 주위의 우물 안에서 발견된 고양이의 뼈가 잘 말해준다. 그 우물에선 고양이 여섯 마리의 뼈가 나왔다고 하니, 당시 가야 사람들이 고양이와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지 알 수 있다.


고구려에서 불교 경전을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면서 그것을 갉아먹는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처음 들여왔다고 한다. 하지만 가야의 농경사회에선 경전이 아닌 곡식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했던 것이다. 집모양토기는 이를 잘 말해준다.


지난 연재 보기 ▶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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