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가 금빛 고양이를 분양하려다 한 소리 듣다 - 고양이 인문학 : 묘묘한 이야기

세자가 금빛 고양이를 분양하려다 한 소리 듣다 - 고양이 인문학 : 묘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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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인문학​​​​​​​​​​​​ 

한 이야기

글 | 황의웅 (크리에이터, www.miyaclub.com)



세자가 금빛 고양이를 분양하려다 한 소리 듣다


오래 전 중국 등에서 고양이를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목적을 보통 사찰의 불경을 갉아먹는 쥐를 잡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고양이는 그렇게 우리 곁에서 한 동안 하나의 목적에 쓰일 가축으로 있다가 점점 애완동물의 위치로 올라온다.


몇 백 년 전의 사료와 문헌을 통해 그런 분위기가 고려를 지나 조선의 문화 전반으로 퍼져가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요즘에 활발한 고양이 분양은 물론이고 중성화를 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고려의 대학자 이색의 제자 이첨이 고양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고 같은 제자인 권근(1352-1409)차쌍매당묘유시운(次雙梅堂猫乳詩韵)’란 시를 남겼다. 그 시의 마지막에 주먹 크기의 자그마한 새끼 한 마리를 보내달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우리 역사 최초의 고양이 분양 기록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이어서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을 보면 1417년에 태종의 첫째 아들인 이제(1394-1462, 훗날 세종이 되는 이도의 형), 즉 양녕대군이 금빛 고양이를 구하려고 동지총제 직을 지냈던 신효창의 집으로 사람을 보냈다는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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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효창은 이 사실을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서연관에게 알렸다. 그래서 서연관이 세자에게 그릇된 행동이라 간언을 하자, 세자는 사람들이 수컷 고양이 가운데 금빛이 귀하다 해서 어떤가 한번 보고 돌려보내려고 했다며 둘러댔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권근의 시와 함께 이 기록으로 조선 시대의 고양이 분양 문화가 활발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흔하지 않은 금빛의 수컷 고양이에 관심을 갖고 번거롭게 사람까지 보낸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이 고양이에 대한 관심도가 낮지 않았음도 추측할 수 있다.


한편 조선 전기의 문신 이순지(1406-1465)<선택요략(選擇要略)> 하권 중 육축류를 보면, 분양에 더해 중성화에 대한 글도 발견된다. 이 책은 날마다 치르는 행사의 좋은 날짜와 방위를 택하는 방법을 써 놓았는데, 고양이의 거세와 구입, 입양 등에 대해서도 적어 놓았다.


중성화에 해당되는 정묘(淨猫)’는 수말의 거세와 같다면서 도침, 비렴, 수사, 본속 방위에서 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나온다. 또 분양에 해당되는 납묘(納猫)’ 부분에는 천덕, 월덕, 생기일이 좋고 천덕과 월덕 방위로 들이면 좋다고 하는 반면, 비렴일과 학신을 피해야 하는데 비렴의 방위로 들이면 나쁘다고 나온다.


이런 기록들을 통해 조선 시대의 고양이 사육 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와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고려와 조선에서 고양이는 이미 오늘날처럼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리한 하나의 문화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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